jiu song
그리고(et)의 희미한 사슬
-<구성원들은 자상하다, 유영공간(2022.08.10-18)>의 여는 글에서.
글 신지현 (큐레이터)
송지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가시화 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안고 작업에 임한다. 그의 작업은 매체를 확정 짓기보다는 ‘조각을 그리고’’드로잉을 조각하는’태도에서 비롯된다. 식물유래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만든 PLA 필라멘트를 재료 삼는 3D 펜으로 조각을 그리거나 나무판 위에 카빙 하는 방식으로 형상을 그리고 새겨넣는다. 일련의 작업 과정은 그에게 자가치유적인 시간이 되기도 하는데, 그는 작가 자신 나아가 주변과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재료를 배제하고 대안적 재료로서 식물유래 성분의 것들로 작업을 지속하길 희망한다. 자연에서 얻은 것은 언제든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태를 함의한 채, 되기(devenir)의 블록1)안에 머문다. 그리하여 나무, 옥수수 전분 등의 재료로 그가 빚어낸 그림은 태도와 같이 (형태가) 둥글고, (선은) 머뭇거리는 동시에 신중하다.
송지유의 작업 각 개체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큰 덩어리이자 중심을 이룬다. 그것은 나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방향성과 같이 일정한 방향을 가지고 유동한다. A 작업이 존재하기 위해선 B 작업이 필요하고, A 작업이 있기에 B 작업은 비로소 당위성을 갖추게 된다. 각각의 정체성은 사이의 흐름 안에서 희미한 사슬2)로 연결된 듯 운동하며 변용한다. 대체로 둥근 선과 형상, 뭉툭하지만 부드러운 감각, 희미하지만 투명한 색의 채도가 송지유가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시선을 담아낸다.
<spark덮으리>, <magical바라지>,<헐렁한 뼈> 등과 같이 시적인 작품 제목은 평소 필사 습관이 있는 작가의 노트에서 비롯된다. 어떠한 컨디션으로, 어떤 감정일 때 적어내렸느냐에 따라 글씨는 언어인 동시에 선이 되어 작품 제목이 되었다가 어느새 작품 이미지로 (<magical바라지>) 흘러 들어가기도 한다. “작업에서 무언가를 축적하고 기다리는 시간, 텅 빈 곳에 사물이나 상상, 촉각적 경험들을 배치하며, 비로소 나를 벗어나는 그 찰나가 중요하다3)”고 말하는 작가에게 언어와 이미지, 제목과 작품은 평등한 공명의 관계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스스로 “어떻게 만들지?”를 화두에 두고 이를 풀어나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해주었다. 미래를 향하는 거대한 질문에 작가는 자꾸만 눈이 가는 이미지, 그리고 손으로 빚어내게 되는 형상을 드러내기로 결심한 듯 보인다. 그리하여 그의 작업은 자연스럽다. 인위적인 것이 없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자연과 닮아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떠한 꾸밈이나 장식성을 좇는다기보다는 재료 본연의 성질, 인간 본성에 대한 솔직한 마음이 담겨 있다.
매분 매초 우리는 다른 정보값과 이미지 환경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하나의 축으로 꿸 수 없는 파편적 정보와 이미지들이 쌓여 우리의 하루가 되고 일상이 되고 삶의 일부가 된다. 그의 작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정한 형상을 재현하려는 시도가 아닌 작업 앞에서 보내는 시간, 재료를 다루고 손끝으로 그것을 다루는 일련의 과정, 그것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 내려진 색을 고르고 그것을 사이( entre)의 농도로 그려내는 일. 이 일련의 과정들이 송지유의 작업의 일부가 된다.
1)정상성으로 수렴하는 근대적 인간 개념의 비판으로서의 실천적 제언으로 들뢰즈와 가타리는 되기(devenir)의 개념을 제안한 바 있다. ‘사이’라고도 이야기 될 수 있는 ‘되기의 블록’은 하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심과 이를 유지하는 장치로부터 벗어나는 변화를 의미한다. 김은주, <들뢰즈와 가타리의 되기 개념과 여성주의적 의미: 새로운 신체 생산과 여성주의 정치>, <한국여성철학>21, 2015, 97쪽.
2)송지유 작가노트 속 다음의 문장에서 표현을 빌려왔다. “서로 다른 출처처럼 보이는 기다란 장면의 연결은 우연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연으로 뭉뚱그려 말할 수만은 없다. 내가 연결해온 장면들 모두 다 언젠가 근거리에서 지나쳐 온 풍경과 감각, 감정, 오해의 반영이다. (…) 나는 그렇게 이어져온 희미한 사슬에 연민을 느낀다. 단일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유롭다고 느껴진다.”
3)송지유 작가노트 참조.